MBC 신입 PD 이재진씨를 만나다.
정말이지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이제 다시 일어서보려는 MBC가 든든한 지지대로 선택한 2006 MBC 신입 드라마 PD 이재진씨를 만나보았다. 주변에서 PD를 꿈꾸는 사람, 또 그 꿈을 아깝게 놓쳐버린 사람들을 많이 보아오던 터라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주인공이 마냥 궁금하기만 했다. 설레는 맘으로 아침부터 서두르다 약속시간 30분전에 도착해 버렸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보았다. 마침내 약속했던 시간이 되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사람 좋게 웃으며 이재진씨가 들어왔다.
#. 기분 좋은 예감, 이재진.
ZIME:
우선 축하드려요. 합격하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던가요?
다들 말도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웃음) 사실 PD가 되겠다고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게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들 좀 믿기 어려운 눈치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벌써부터 이 PD라고 불러요. 다들 축하해 주시고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죠.
ZIME:
경쟁률이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PD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눈독 드리는 자리죠. 그 많은 사람들 중에 MBC가 본인을 선택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저도 그게 너무 궁금해요.(웃음) 그냥 저는 자기소개서 쓸 때부터 마지막 임원면접 할 때까지 저만의 컨셉을 하나 잡아서 쭉 밀고 나갔어요. 먼저 PD를 제작 스탭들과 배우, 작가 등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교통정리를 해 주는 사람이라고 나름대로 정의를 해 두고 내가 잘난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나를 낮추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의 이미지를 보여 주었죠. 그런 겸손한 이미지가 오히려 저를 돋보이게 해 주지 않았나 싶어요.
ZIME:
좀 더 구체적인 노하우(?)가 있다면요?(^^)
음, 직접 영상을 구성하고 만들어보는 현장 경험이요. 영화제작과 초급 TV 제작 수업을 들으면서 이렇게 찍으면 어떤 화면이 나올 것이라는 감각을 익혔죠. 그 경험이 굉장히 도움이 되었어요. 실제 합숙 면접 단계에 올라온 20명의 지원자 중에 7~8명 정도가 카메라를 다룰 줄 모르는 분들이시더라고요. 물론 30분정도 간단하게 지도를 받지만 그래도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차이가 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PD 준비하시는 분들 보면 드라마 분석이나 논술, 작문 연습에 더 치중하시는 것 같은데 제 경우에는 그런 것보다 직접 기획해 보고 스토리 보드도 그려보고 화면에 담아보는 연습이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ZIME:
혹시 면접 질문 중에 본인이 생각해도 잘 받아 넘긴 질문이 있다면요?
마지막 임원 면접이 특히 까다로웠어요. 다른 조는 20분이 채 넘지 않았다는데 저희 조만 45분이 넘는 시간동안 정말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연신 물어보셨죠. 특히 요즘 PD들은 기껏 방송사에서 키워주면 다 독립 제작사에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나가버린다는 얘기를 하시며 이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시는 질문이 기억에 남아요. 저보다 먼저 대답하신 분은 아무래도 MBC 시스템 안에서 PD의 예술가적 기질을 펴기 좀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다는 대답을 하시고는 엄청 공격을 받으셨죠. 그래서 저는 조직에 대한 자부심 이야기를 했어요. 잘난 개개인이 조직을 끌어가는 경우가 있을수 있지만 조직이 일원을 받쳐주고 커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경우가 많고 MBC는 바로 그런 조직이라고 말씀드렸더니 흡족한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ZIME:
합숙 하실 때 하루 종일 글만 쓰시느라 고생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기억에 남는 재밌었던 일은 없었나요?
PD 준비하시는 분들은 팔운동 꼭 하세요. 글 굉장히 많이 쓰거든요. 드라마 PD는 특히 심했죠. 그래도 첫날밤에 가졌던 술자리는 참 재밌었어요. 현업에 계시는 분들과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약간은 긴장을 풀고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는 나이가 좀 어린 편이라 재미있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다보니 ‘너 왜 예능 PD가지 여기 있냐?’는 말까지 듣게 됐죠.
ZIME:
서강대학교 취업 게시판에 올리신 글을 읽었어요. 필기시험 전형 때 작문을 <트라우마>나 <츄리닝>의 느낌으로 풀어가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요.
제가 논술을 대비해서 특별히 글쓰기 연습을 해 오던 게 아니라 작문에 승부수를 띄우자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도 ‘파격’이라는 주제어를 보고 괜찮은 아이디어가 금방 떠올랐죠. 축구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구 경기 하나 하면 모두가 왈가왈부 제 목소리 높이기 바쁘잖아요. 가만히 보고 있자면 다들 축구 전문가죠. 그래서 이런 상황을 제가 즐겨보는 인터넷 만화처럼 풀어갔어요. 우선 내년 독일 월드컵에 한국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한다는 상황을 가정하고 위원회가 열리죠. 신문선 해설위원, 허정무 전 감독, 홍명보 코치 등 실제 관계자들을 등장시켜 각각의 캐릭터에 맞는 의견들을 내 놓죠. 중간 중간 ‘한국 축구를 키운 것은 팔 할이 군대다’라는 식의 유머도 좀 섞고요.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누군가가 정말 파격적인 대안이 있다며 말을 하죠. ‘랜덤...’ 전 국민이 전문가인데 아무나 골라서 내보내면 될 것 아니냐는 거죠. 축구팬으로서 그동안 느꼈던 바를 조금 냉소적이지만 재미있게 담아보려고 했어요.
ZIME:
재밌네요. 실제로 쓰셨던 글을 한번 읽어보고 싶은데요.(^^) <트라우마>에 심취하신 분이라면 뭔가 남다른 면이 있을 것 같은데, 지원서 쓰실 때 취미는 뭐라고 쓰셨는지 갑자기 궁금해요.
별로 특이할 건 없는데. 농구하고 만화그리기라고 썼어요. 특히 만화 그리기를 너무 좋아해서 수업시간에 저도 모르게 만화를 그리면서 필기를 해요. 어느 순간 공책을 보면 교수님 얼굴이 그려져 있고 말풍선 안에 수업 내용이 들어가 있죠. 그래서 제 공책에는 별 내용은 없고 그림만 잔뜩 있어요. 그리고 농구는 좋아하기도 운동이기도 하지만, 취미가 노래가 됐든 춤이 됐든 심지어는 골프까지 직접 해 보이게 했대서 어렵지 않게 보여줄 수 있는 농구를 적어봤죠.
#. 만화 같은 드라마를 꿈꾸는 유쾌한 남자.
ZIME:
이제 본격적으로 드라마 얘기 좀 할게요. 상투적인 질문일 수 있겠지만 가장 감명 깊게 봤거나 재미있게 본 드라마를 꼽는다면?
올해 초에 방영됐던 <신입사원>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제가 만화 그리기도 좋아하지만 보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신입사원>은 마치 만화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웃기도 많이 웃었고, 저도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요.
ZIME:
만화 같은 드라마요? 감이 잘 안 오는데 설명 좀 더 해주세요.
저는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그 재미라는 것이 사람마다 제각각이죠. 어떤 사람은 <장미빛 인생>처럼 감동적인 이야기에 재미를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무서운 이야기에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재미를 주기란 참 힘이 드는데 그래도 가장 기본이 되는 포인트는 웃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편하게 보고 웃을 수 있기에는 코믹 드라마가 적격이죠. 저는 이런 코믹 드라마를 만화적인 장치를 써서 만들어 보고 싶어요.
ZIME:
그런데 어떻게 보면 거의 모든 드라마가 만화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현실에서는 있을 법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말도 안 되게 풀어가는 드라마들이 상당히 많은데.
만화나 드라마나 모두 픽션일 수밖에 없죠. 실제가 아닌 허구라는 출발점은 같지만 제가 말하는 만화적인 장치는 만화 같은 설정이 아니에요. 설정 자체는 굉장히 현실적이지만 스토리 전개를 만화책 보듯이, 책장 넘기듯이 한다는 얘기죠. 기본적으로 만화는 전개가 굉장히 빠르거든요. 그리고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만화적인 화면 분할도 사용해 볼 수 있겠고요.
ZIME:
굉장히 기대되는데요. 언제쯤 만화책 보듯이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될까요?(^^)
적어도 6~7년은 기다리셔야 될 텐데요. 드라마 PD가 자기 이름을 걸고 작품을 만들려면 예능이나 시사교양 PD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해요. 그동안 조연출을 하며 내공을 쌓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 기획안이 통과가 되어야겠죠.(웃음)
#. 그 남자의 드라마 보기.
ZIME:
저희 기사 읽어보셨어요? 한달에 두 번 드라마 이야기를 쓰거든요.
저번 호였던가요? 시청률이 잘 나오면 내가 잘 만들었기 때문이고 안 나오면 경쟁사가 시청률을 너무 잡아먹고 있기 때문이라는 글을 봤어요. 요즘 MBC가 드라마부분 경쟁에서 참패를 거듭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시청률 문제죠. 아시다시피 지상파 방송사의 시청률은 계속 낮아지고 있고 지상파 DMB가 상용화되면 더 심해질 거예요. 갈수록 줄어드는 시청률을 어느 정도는 나눠먹어야 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죠. 특히 MBC는 지나치게 젊은 트랜드만 쫓다 보니 더욱더 시청률을 나눠먹을 수 있는 여지가 없어졌죠.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디 드라마 꼬박꼬박 챙겨 보나요? 다시보기가 있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인터넷으로 다운받아서 볼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굳이 식구들과 다퉈가며 제 입맛에 맞는 드라마를 보기보다 가족들과 함께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찾게 되죠. 왜 혼자 보는 것보다 같이 보는 게 더 재미있잖아요. 이렇게 젊은 사람들과 그들의 부모님 세대가 함께 하는 드라마를 최근 MBC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요. 그게 드라마에서 고전하는 이유 중에 하나고 네 탓만 하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ZIME:
혹시 기사를 부탁한다면 어떤 화두를 가지고 쓰고 싶으세요? 아이템 얻는 데 참고 좀 하려고요.
마니아 드라마 분석해 보는 거 어때요? <네 멋대로 해라>가 거의 마니아 드라마의 원조고 이후에 여러 드라마들이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시청률은 크게 높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큰 유행을 일으킨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마니아 드라마들을 한데 모아 이야기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ZIME:
아이템 하나 얻었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요즘에는 어떤 드라마 보고 계세요?
저번 주에 시작한 <달콤한 스파이> 보고 있어요. <신입사원>을 쓰셨던 작가분들 작품이거든요. <신입사원>처럼 만화적인 느낌도 있고 굉장히 재밌어서 앞으로도 기대가 되요. 그래서 쭉 지켜보는 중입니다. 그리고 <비밀남녀> 다운받아서 보고 있고요. 몇 회 보지는 못했지만 꽤 잘 만든 드라마 같아요. 재미있고 신선하고요.
ZIME:
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특별히 좋아하는 배우 있으세요? 드라마 보시면서 같이 일 해 보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요?
<맨발의 청춘>에 나오는 강경준씨 좋아해요. 드라마가 뜨지 못해서 배우도 빛을 못 받고 있는데 연기 잘하고 충분히 가능성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또 <여고괴담>에 나왔던 김옥빈씨도 기회가 된다면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 중에 하나고요.
처음 인터뷰를 제의했을 때부터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면서까지 머리를 긁적이며 ‘제가 뭐 인터뷰 할 게 있나요’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던 이재진씨였다. 사람 좋게 웃는 얼굴 그대로 인터뷰 내내 참 편안했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서 하나 둘 터져 나오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게 만드는 참 유쾌한 남자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부러움 속에 첫 발을 내딛는 이재진씨, 아직 자신의 자리가 신기하기만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할 테지만 누구보다 잘 해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이재진씨의 만화 같은 드라마를 빨리 만나 볼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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